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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가면리아 남부투어(첫) - 폼페이 ??
    카테고리 없음 2020. 1. 26. 06:32

    5년 전에 친구와 떨어진 남부 투어를 다시 아내와 오게 되었다. 이탈리아 남부의 소도시를 실제론 소탈에 불과했을 뿐이지만, 그래도 사랑하는 이와 함께 한 번 더 해안도로의 햇빛을 받으러 가는 것은 즐거운 설렘이다. 여러 가지 사정이 있었기에 처의 실음부터 밝고 반갑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 정도 느낌이 상쾌해진다면 성공이라고 할 수 있다.대부분의 하루 남부투어와 거의 비슷하며 폴리와 쏘렌토, 아내 영피해안도로를 경유하는 일정이다. 유럽 일정 중 비가 올 것이라는 예보 때문에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출발했지만 돌아오는 내용은 그래도 화창한 햇살을 받으며 해왔다. 바람과 파도로 크루즈 일정은 눈물을 머금고 취소하게 됐지만 지난 번 가지 못했던 폼페이 유적에도 가고 쏘렌토도 구경하고 같은 여행사 같은 투어입니다에도 색다른 재미를 붙였다. 따뜻한 지중해 기후와 비옥한 토양 덕분에 남쪽에는 농업이 발달했습니다. 국가적으로 북으로 공업을 발전시킨 것이 결과적으로는 빈부 격차로 이어졌지만 남쪽도 잘살려고 만들어진 농업노동조합이 마피아다. 그 무서운 조직이 우리가 가는 데 있는 나빠서 폴리에서 아내의 실음으로 시작됐다고 한다. 왠지 조금 흔들리는 마음을 잡고 투어의 최초의 경유지 폼페이 유적지로 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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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폼페이 유적의 입구에 해당하는 포르타마리나는 바다로 향하는 길이라는 뜻이었다. 현재와는 지형의 모습이 달라서 바다와 직접 연결되는 곳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대로마제국답게 사람이 다니는 문과 마차가 다니는 문이 모두 함께 만들어져 있다는 것이 제국의 스케일을 말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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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는 배를 묶어두는 곳입니다"라고 하는데, 본인에게 뒤편으로 보이는 튀어나온 본인 온돌이 배를 묶는 용도로 사용되었다고 추측할 수 있다.여기 폼페이의 비극은 많은 사람들이 들어서 알고 있다. 베수비오 화산의 활동이 치열하게 전개됐던 63년 대지진이 1어 했다. 인구 2천명이 다 같이 사는 대도시가 건설되던 곳이었지만 불길한 조짐을 느낀 사람은 18,000명이 화산 폭발 전에 다른 거처를 찾고 달아났다. 그 때문에 남아 있던 2,000명의 사람들은 78년 베수비오 화산 폭발과 함께 도시와 함께 묻혔다. 육지에서 더는 도망 갈 곳이 없다, 바다로 뛰어드는 것 봤는데 배에 탄 사람들도 300번(이것이 가능한지 몰겟우 본인)수온의 바닷물에 익숙해지고 시체가 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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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산 폭발 때 강한 화산가스에 질식해 숨진 사람들의 상공을 흐르던 화산재가 쌓였다. 덮인 자리에 아래를 묻고 있던 시체는 세월 썩어 빈 공간이 생겼다. 유적을 발굴하던 사람들이 그 공터에 석고를 흘려 다시 인간과 짐승의 모습을 복원한 것이 곧바로 캐스팅됐다. 딱딱한 자세와 모양이 평온해 보이거나 힘들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1800년 훨씬 과인 지그와잉이 되고 캐스팅에서 이들의 존재가 알려졌다고 하니 쓸쓸하고 외로운 것은 분명하다.이렇게 순식간에 완전히 망하고 지도에서 지워버린 도시가 있다는 것은 신기하다. 역시 허무하고. 흔한 일은 아니지만 아무런 적도 없는 자연의 섭리 앞에 뭔가를 기대하고 의도하는 것 자체가 다소 장님으로 보일 것이다. 너 무허무주의로 간 와인 그래, 아직 신혼이니까. 허락된 시간이 길기를 기대해 본다. 관악산 터지는 거 아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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